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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수익 인증이 쏟아질 때 현금을 들고 가만히 있으면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저도 여러 번 그랬습니다. 상승하는 종목을 보고 있으면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는데도 매수 버튼에 손이 가고, 반대로 모두가 공포에 빠졌을 때는 좋은 기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쉽게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스탠리 드루켄밀러의 투자 인생을 다시 살펴보면서 제가 가장 흥미롭게 느낀 것은 그가 어떤 종목을 샀느냐가 아니었습니다. 30년 가까이 Duquesne Capital을 운용하며 손실 연도 없이 살아남은 투자자가 어떤 환경에서 판단했고,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 때 어떻게 대응했는지가 더 중요해 보였습니다. 결국 장기적으로 시장에서 살아남는 데 필요한 것은 완벽한 예측보다는 기다릴 수 있는 자유와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유연성인지도 모릅니다.
패밀리오피스로 바꾸자 투자 방식도 달라졌다
드루켄밀러는 2010년 약 120억 달러 규모였던 Duquesne Capital Management를 폐쇄하고 외부 투자자들의 자금을 돌려줬습니다. 이후 자신의 자산을 중심으로 운용하는 패밀리오피스 형태로 투자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실제로 당시 그는 고객에게 높은 수익을 안겨주는 기쁨보다 중간중간 발생하는 손실 구간이 자신에게 누적되는 부담이 너무 커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후에는 외부 투자자의 평가와 단기 성과 압박에서 상당 부분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이 변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운용 주체가 바뀌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헤지펀드 매니저는 고객의 돈을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현금을 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결정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시장이 상승하는데 자신의 펀드만 현금 비중이 높으면 상대적인 수익률이 떨어지고, 투자자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인 투자자는 다릅니다. 우리는 매 분기 누군가에게 수익률을 보고할 필요도 없고 펀드 순위 경쟁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마음에 드는 종목이 없다면 몇 달 동안 현금을 보유해도 됩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개인 투자자가 기관보다 가질 수 있는 꽤 큰 장점입니다.
저도 시장이 강할 때 이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금을 가지고 있으면 기회를 놓치는 것처럼 느껴져 확신이 없는 종목까지 매수하게 됐고, 결국 시장이 흔들리면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할 포지션이 되어버렸습니다. 드루켄밀러의 사례를 보고 난 뒤에는 ‘항상 투자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현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포지션이 아니라 다음 기회를 기다릴 수 있게 만드는 선택권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시장에서는 비켜서고 정말 확신이 생겼을 때 자금을 사용하는 것, 이것이 패밀리오피스 전환 이후 드루켄밀러가 얻은 가장 큰 자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드루켄밀러에게서 배울 수 있는 다섯 가지 투자 원칙
드루켄밀러의 투자 방법을 살펴보면 하나의 가치평가 공식이나 특정 차트 기법보다 사고방식에 가까운 원칙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저는 이를 다섯 가지 정도로 정리해봤습니다.
- 첫째,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보라. 시장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습니다. 기업의 실적이나 경제지표가 지금 좋아 보이더라도 시장은 이미 몇 개월 이후의 변화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 둘째, 유동성을 중요하게 보라. 기업 실적만큼 중앙은행의 금리와 유동성 환경도 자산가격을 크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직후 실물경제가 크게 위축됐음에도 막대한 유동성이 공급되면서 주식시장이 빠르게 반등했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 셋째, 완벽한 정보를 기다리지 않는다. 투자 기회가 완전히 명확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이미 가격이 상당 부분 움직인 이후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사고방식입니다.
- 넷째, 확신이 강할 때는 비중을 높인다. 모든 종목을 동일한 비중으로 보유하기보다 자신이 가장 높은 확신을 가진 기회에 집중하는 것이 그의 투자 스타일입니다.
- 다섯째, 투자 가설이 틀렸다면 빠르게 인정한다. 자신이 매수했다는 이유로 그 종목을 끝까지 옹호하지 않고 환경과 가설이 바뀌면 포지션도 바꾸는 태도입니다.
이 가운데 개인 투자자가 특히 조심해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세 번째와 네 번째라고 생각합니다. ‘완벽하게 조사하지 않고 먼저 산다’거나 ‘확신이 생기면 집중 투자한다’는 말만 떼어놓고 보면 굉장히 공격적인 투자 전략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드루켄밀러에게는 수십 년 동안 시장을 경험하면서 쌓인 판단력과 잘못됐을 때 빠르게 포지션을 줄일 수 있는 규율이 있었습니다.
개인 투자자가 이런 배경을 무시하고 ‘거장도 집중투자했으니 나도 한 종목에 몰빵하겠다’고 받아들이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개인 투자자라면 작은 금액으로 먼저 자신의 가설을 확인하고, 생각과 반대로 움직이는 데이터가 나타났을 때 비중을 줄이는 훈련부터 하는 편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크게 공감한 것은 마지막 원칙입니다. 주식을 매수하면 이상하게도 그 순간부터 좋은 기사에 눈이 더 많이 갑니다. 목표주가가 올라간 뉴스는 기억하면서 부정적인 실적 전망이나 경쟁사의 성장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확증편향입니다. 이미 내린 판단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증거는 외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투자에서는 내가 맞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결국 돈을 잃지 않고 장기간 살아남는 것이 목적입니다. 어제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확인된다면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를 부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단순한 원칙이 생각보다 가장 지키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시장에서는 정책을 이용했다
드루켄밀러의 투자 철학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자신의 경제관과 실제 투자 결정을 분리한다는 점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미국의 과도한 재정지출과 양적완화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습니다. 특히 코로나19 초기 경제를 살리기 위한 긴급 부양책은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경제가 회복되는 과정에서도 막대한 재정·통화 부양이 계속된 것에는 강하게 우려를 표시했습니다.
하지만 정책을 싫어한다고 해서 그 정책 때문에 상승하는 시장을 무조건 외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공급하면 그것이 자산가격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분석하고 실제 투자에는 그 환경을 반영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개인 투자에서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정책이나 금리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시장도 반드시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정책은 잘못됐다’와 ‘그래서 주가는 떨어질 것이다’는 완전히 다른 판단일 수 있습니다.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세상이 아니라 실제로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정책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과 자산가격에 대한 전망을 구분해서 보는 태도는 투자할 때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든다고 느낍니다.
엔비디아를 팔았다고 AI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드루켄밀러의 AI 투자 역시 그의 투자 방식을 이해하기 좋은 사례입니다. 그는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시장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던 시기에 엔비디아에 투자했고 이후 주가가 크게 상승하는 과정에서 보유 비중을 줄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엔비디아 주가는 그가 매도한 이후에도 상당 기간 상승했기 때문에 ‘너무 일찍 팔았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매도 이후가 더 흥미롭다고 봅니다. 좋은 투자자는 반드시 고점에서 팔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처음 생각했던 투자 아이디어가 충분히 반영됐거나 다른 곳의 기대수익이 더 좋다고 판단되면 자금을 이동할 수 있습니다.
드루켄밀러 역시 AI라는 거대한 변화 자체를 부정했다기보다 AI에 직접 투자하는 영역과 간접적으로 수혜를 받을 영역을 계속 비교해왔습니다. 반도체 공급망, 헬스케어, 금융, 원자재 등 서로 다른 분야로 포지션을 옮기는 모습에서 특정 종목과 하나의 내러티브에 집착하지 않는 특성이 나타납니다.
개인 투자에서도 배울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엔비디아가 좋은 기업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평생 엔비디아만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기업과 좋은 주가는 다른 문제이고, 가격이 크게 상승하면 미래 수익률 역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13F 포트폴리오를 볼 때 반드시 알아야 할 점
드루켄밀러의 투자 방향을 확인할 때 흔히 이용하는 자료가 미국 SEC의 13F 공시입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미국 주식 등을 운용하는 기관투자자는 분기별 보유 내역을 Form 13F로 공개합니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13F는 실시간 포트폴리오가 아닙니다. 분기 말 기준 보유 내역을 분기 종료 후 최대 45일 뒤에 공개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공시를 확인하는 순간에는 이미 해당 종목을 매도했거나 비중을 크게 바꿨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과거 특정 분기의 RSP, TSMC, 금융주, 헬스케어 종목 등의 편입 내역을 보고 이를 ‘현재 드루켄밀러 포트폴리오’라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특정 시점에 그가 어떤 판단을 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스냅샷에 가깝습니다.
저는 그래서 거장들의 13F를 볼 때 종목 자체보다 변화에 더 관심을 둡니다. 이전 분기보다 어떤 업종을 늘렸는지, 무엇을 줄였는지, 기존 투자 논리와 어떤 연결점이 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단순히 ‘드루켄밀러가 샀으니 나도 산다’는 방식보다는 훨씬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 투자자가 드루켄밀러에게서 가져올 수 있는 것
개인적으로 드루켄밀러의 포트폴리오를 그대로 복사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확인하는 순간에는 이미 그의 포지션이 바뀌었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우리가 그와 같은 규모의 정보망과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개인 투자자가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사고방식입니다. 지금 좋은 기업을 찾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년 뒤 그 기업의 환경이 어떻게 바뀔지를 상상하는 것, 기업 실적과 함께 금리와 유동성을 보는 것, 확신이 없을 때 억지로 매수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확인됐을 때 인정하는 것입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투자에서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한 번의 판단이 틀렸느냐보다 틀린 판단을 얼마나 오래 끌고 가느냐가 계좌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좋은 투자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더 많은 종목을 찾아내는 능력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을 겪을수록 중요한 것은 내가 잘못됐을 때 대응할 수 있는 구조라는 생각이 커지고 있습니다. 현금을 보유할 수 있는 여유, 과도한 레버리지를 사용하지 않는 것, 하나의 종목에 모든 자산을 걸지 않는 것 역시 결국 생각을 수정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드루켄밀러는 정말 30년 동안 손실을 낸 적이 없나요?
A. Duquesne Capital의 장기 운용 기록은 손실 연도가 없었던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이것이 투자 과정에서 손실이나 큰 드로다운이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개별 포지션에서 큰 손실을 경험한 적도 있었고, 2010년에도 연중 한때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개별 실패를 겪으면서도 연간 성과를 장기간 관리했다는 점입니다.
Q. 드루켄밀러 포트폴리오를 그대로 따라 사도 될까요?
A. 저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13F는 분기 말 기준 포지션을 최대 45일의 시차를 두고 보여주기 때문에 공시가 나온 시점에는 이미 보유 종목이나 비중이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종목 이름보다 왜 해당 자산을 선택했는지를 분석하는 용도로 활용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Q. 개인 투자자도 집중투자를 해야 할까요?
A. 드루켄밀러의 집중투자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오랜 경험과 위험관리 능력을 바탕으로 포지션을 빠르게 변경합니다. 개인 투자자는 자신이 분석하고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분산하고, 확신에 따라 비중을 차등화하는 정도가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Q. 가장 현실적으로 따라 할 수 있는 원칙은 무엇인가요?
A. 저는 ‘가설이 틀리면 인정한다’와 ‘확신이 없으면 기다린다’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투자 규모가 작아도 충분히 연습할 수 있고, 장기간 큰 손실을 피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드루켄밀러의 투자 인생을 살펴보면서 제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거장의 포트폴리오를 외우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가 엔비디아를 샀는지, 금융주를 샀는지, 원자재를 늘렸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계속 바뀔 수 있습니다.
반면 그의 사고방식에는 일관된 부분이 있습니다. 현재보다 미래를 보고, 유동성의 변화를 관찰하고, 좋은 기회가 없으면 기다리고, 확신이 생기면 움직이며, 자신이 틀렸다는 증거가 나오면 자존심보다 돈을 먼저 지키는 것입니다.
저에게 특히 인상적인 것은 현금을 보유할 수 있는 자유와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자유입니다. 우리는 시장에 항상 참가할 필요도 없고 어제 산 종목을 오늘도 좋아해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 시장에 남아 다음 기회를 잡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장의 투자법을 그대로 복사하는 대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에서 작은 가설을 세우고, 결과를 확인하고, 틀렸다면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방법일 수 있습니다. 드루켄밀러의 30년 기록에서 개인 투자자가 배워야 할 것은 다음 대박 종목이 아니라 바로 이런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Duquesne Capital은 2010년 외부 투자자 자금을 반환하고 폐쇄됐으며, 이후 드루켄밀러는 패밀리오피스를 통해 자신의 자산을 관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