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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OpenAI에서 해고된 지 두 달 만에 165페이지짜리 에세이를 공개하고 같은 날 헤지펀드 설립을 선언한 인물이 있습니다. 레오폴드 아셴브레너입니다. 그리고 2년 만에 운용 자산(AUM)을 2억 5천만 달러에서 200억 달러로 불렸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이게 실력인가, 아니면 타이밍인가"라는 의문이 먼저 들었습니다. 천재 예언자의 서사와 실제 수익률 사이에 얼마나 많은 행운이 끼어 있는지, 제 과거 투자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냉정하게 뜯어봤습니다.
인프라 투자: 병목을 먼저 본 자가 이긴다
아셴브레너의 에세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예측은 'AI 병목 현상'입니다. 그는 2026년 AI 분야 연간 투자액이 5천억 달러를 넘을 것이라고 봤는데, 당시 업계에선 과도한 전망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빅 5 하이퍼스케일러(대형 클라우드·IT 기업군)의 설비 투자 전망치가 6천억 달러대까지 치솟으며 그 수치를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전력망 계통 연결 대기, 데이터 센터 전력 계약 쟁탈전 같은 현상도 그가 짚은 그대로 현실이 됐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예전 제 실수가 떠올랐습니다. 챗GPT가 등장했을 때 저는 '서비스 제공 기업'에만 눈이 꽂혔습니다. 어느 모델이 더 영리한지, 어느 앱이 더 많이 쓰이는지를 따지며 포트폴리오를 짰습니다. 결과는 뼈아픈 손실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은 건, 혁신의 수혜는 서비스 선두 기업이 아니라 그 혁신을 물리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기업들에게 먼저, 그리고 더 안정적으로 돌아간다는 점입니다.
전기차 열풍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완성차 브랜드에 베팅하는 대신 배터리 소재나 충전 인프라를 살폈더라면 훨씬 나은 결과가 나왔을 것입니다. 아셴브레너가 'AI 인프라'라는 병목에 집중한 것은 그 방향 자체만큼은 정확했습니다. '어느 모델이 이기느냐'보다 '전력과 냉각 시스템을 누가 쥐고 있느냐'를 먼저 물은 것이 그의 진짜 강점이었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 빅 5 하이퍼스케일러 설비 투자 전망치: 6천억 달러대 (아셴브레너 예측 5천억 달러 초과 달성)
- 전력 계통 연결 대기·전력 계약 쟁탈전 등 인프라 병목 현상 예측 적중
- 챗봇→에이전트 전환 방향성 예측도 현실과 부합
수익률 검증: 레버리지와 행운을 걷어내면 얼마나 남는가
아셴브레너 펀드의 수익률 구조를 뜯어보면 몇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상반기 반도체 지수가 82% 급등하는 강세장이 배경이 됐고, 포트폴리오는 전력·데이터 센터·AI 인프라 섹터에 극도로 집중됐습니다. 상위 10개 종목이 전체 수익의 92%를 차지하는 이른바 '극단적 집중 투자' 방식이었습니다. 여기에 콜옵션을 활용한 레버리지까지 얹혔습니다.
여기서 콜옵션(Call Option)이란 특정 자산을 미래에 정해진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적은 돈으로 큰 베팅을 거는 수단인데, 강세장에서는 수익을 폭발적으로 키워주지만 시장이 꺾이면 손실도 빠르게 확대됩니다. 또한 비상장 주식인 앤스로픽이 누적 수익률 1,600%를 기록하며 포트폴리오의 3분의 1을 차지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종목은 일반 투자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인맥 기반의 투자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신생 헤지펀드는 초기 2~3년간 구조적으로 시장을 아웃퍼폼(시장 대비 초과 수익)하는 경향이 있다는 학계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아웃퍼폼이란 해당 시장 평균 수익률보다 높은 성과를 내는 것을 뜻합니다. 실제로 초기 2년간 연 2.3%포인트 초과 수익을 내다가 이후 매년 평균 -0.4%포인트씩 성과가 떨어지는 패턴이 확인됩니다(출처: NBER(미국 국가경제연구소)). 이는 소규모 자금, 절박함, 기회 포착의 민첩성 덕분입니다.
수십 년간 여러 사이클을 통과한 워런 버핏이나 스탠리 드러켄밀러와 달리, 아셴브레너의 2년 트랙 레코드(실적 이력)는 통계적으로 동전 던지기 연속 성공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제 경험상 강세장에서 레버리지를 쓴 투자자가 자신의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자주 일어납니다.
이해충돌: 예언과 자본 모집이 같은 날 시작됐다
제가 아셴브레너의 에세이를 처음 읽었을 때 가장 불편했던 지점은 '타이밍'이었습니다. 165페이지짜리 '상황 인식(Situational Awareness)' 문서 공개와 헤지펀드 설립 공표가 정확히 같은 날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AGI(인공일반지능)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AGI란 특정 분야에 특화된 현재의 AI를 넘어, 인간 수준 이상으로 모든 지적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범용 인공지능을 의미합니다. 2027년 AGI 도래 가능성을 구체적 연도로 못박고, 미중 군비 경쟁의 수단이라는 국가 안보 프레임을 덧씌우는 방식은 투자자에게 '지금 이 펀드에 들어오지 않으면 기회를 영영 놓친다'는 FOMO(Fear Of Missing Out, 기회를 놓칠 것에 대한 공포) 심리를 극대화하는 전형적 구조입니다.
더 구조적으로 보면 이런 순환이 형성됩니다. AI 예언이 자본을 끌어들이고, 자본이 펀드의 영향력을 키우고, 영향력이 다시 예언의 신뢰도를 높입니다. 그리고 예언의 적중 여부와 무관하게 운용 보수는 발생합니다. 자극적인 예측 자체가 수익 구조의 일부가 되는 셈입니다. 에세이 공개 직전에 이미 OpenAI 재직 시절부터 펀드를 준비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는 것도 이 맥락에서입니다.
이 구조는 90년대 조지 길더와 묘하게 겹칩니다. 길더는 1999년 자신이 추천한 종목들이 평균 247%씩 오르며 막강한 영향력을 누렸지만, 닷컴 버블이 꺼지자 추천 종목들이 줄줄이 파산하며 전 재산을 잃고 집까지 압류당했습니다. 기술적 방향성은 옳았지만, 그 시점에 그 자산으로 실제 돈을 버는 것은 전혀 다른 스킬임을 길더의 사례는 증명합니다. 아셴브레너가 길더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은 아직 없습니다.
생존 편향: 우리는 살아남은 자만 보고 있다
아셴브레너를 특별하게 만드는 데는 미디어의 역할도 큽니다. 수많은 AI 테마 펀드 중 성과를 낸 소수만 지금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생존 편향(Survivorship Bias)입니다. 생존 편향이란 성공한 사례만 눈에 보이고, 실패하거나 소멸한 사례들은 자연히 시야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성공 확률을 실제보다 훨씬 높게 착각하게 만드는 인지 오류입니다. 확률적으로 동전을 열 번 던져 열 번 앞면이 나온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시도한 사람이 충분히 많다면 반드시 나타납니다.
스케일링 법칙(Scaling Law)에 대한 기술적 회의론도 에세이의 핵심 주장을 흔드는 요소입니다. 스케일링 법칙이란 모델 크기와 학습 데이터, 연산량을 늘릴수록 성능이 예측 가능하게 향상된다는 이론입니다. 아셴브레너는 이 법칙에 근거해 유효 컴퓨팅 자릿수(OOM, Order of Magnitude)가 바뀌면 AGI가 자연스럽게 도달한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그런데 스케일링 법칙은 '다음 단어 예측 오류가 줄어드는 것'을 보장할 뿐, 그것이 인간 수준의 범용 지능으로 이어진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출처: Kaplan et al., Scaling Laws for Neural Language Models, arXiv).
데이터 고갈 문제도 심각합니다. OpenAI의 공동 창업자 일리야 수츠케버는 "사전 학습 시대의 종말이 왔다"며 데이터가 AI의 화석 연료라고 언급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소화할 수 있는 기존 데이터는 이미 대부분 흡수됐고, 새로운 연구 영역에서는 '기출문제'가 없어 연산량을 늘린다고 해서 새로운 능력이 자동으로 생겨나지 않는다는 회의론이 업계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여러 최신 모델 벤치마크를 살펴봤는데, 시험 점수는 인상적으로 오르지만 실제 일자리 대체로 이어지는 속도는 예측보다 훨씬 느립니다. 이 괴리가 지금 아셴브레너 예측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셴브레너 13F 공시를 그대로 따라 사면 안 되나요?
A. 13F 공시는 분기 말 기준 45일 이후 공개되는 과거 정보입니다. 여기서 13F 공시란 미국 SEC(증권거래위원회)에 분기마다 제출하는 기관 투자자의 주식 보유 현황 보고서를 말합니다. 옵션 금액, 숏 포지션, 해외 투자, 비상장 주식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명 투자자의 13F를 그대로 복사하면 수익이 날 것이라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제 경험상 실제 포트폴리오의 핵심 베팅이 빠진 껍데기를 따라가는 격에 불과합니다.
Q. AGI 2027년 도래 예측은 얼마나 믿을 수 있나요?
A. 아직은 미결 사항으로 봐야 합니다. AGI의 정의 자체가 기관마다 다르기 때문에 2027년이 되더라도 '달성'과 '미달성'의 판정이 엇갈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케일링 법칙만으로는 AGI로의 도약이 필연적이라는 증거가 부족하며, 업계 다수도 현재 접근 방식만으로는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하나의 가설로 참고하되 맹신은 금물입니다.
Q. 아셴브레너의 수익률이 높은 건 실력 때문인가요, 운 때문인가요?
A. 둘 다 섞여 있습니다. AI 인프라 병목을 먼저 파악한 통찰, 딥시크 쇼크 당시 패닉 매수, 옵션을 유연하게 조절한 헤지 운용 등은 실력의 흔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익의 상당 부분은 강세장 타이밍, 극단적 레버리지, 비상장 주식 앤스로픽의 1,600% 수익이라는 구조적 행운에 기댄 측면이 있습니다. 단일 강세 사이클 2년으로는 판단이 이릅니다.
Q. AI 투자할 때 어떤 시각으로 접근하면 좋을까요?
A. 제 경험상 '어느 AI 모델이 가장 똑똑한가'보다 '누가 그 모델이 돌아가게 만드는 병목 자원을 쥐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 훨씬 유효했습니다. 전력, 냉각 시스템, 데이터 센터 인프라가 그 대상입니다. 서비스 기업보다 인프라 기업에 먼저 눈이 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이 시각도 사이클이 바뀌면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결론
아셴브레너의 수익률과 예측 적중 사례는 분명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그 수익률의 해부도를 보면 강세장 타이밍, 극단적 레버리지, 비상장 주식 인맥, 생존 편향이라는 네 가지 요소가 얼마나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제가 과거에 혁신 서비스 기업에만 집중하다 손실을 봤던 것처럼, 화려한 서사에 끌려 그 서사의 이해충돌 구조를 놓치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합니다.
아셴브레너의 뷰는 현재로선 여전히 가설 수준입니다. 맹신도, 무시도 아닌 비판적 참조가 적절합니다. 그의 수익률 원천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조건이 바뀌면 그 엣지가 사라지는지, 그리고 이 예언이 누구의 이익을 위해 설계된 것인지를 스스로 따져보는 습관이 결국 본인의 투자 판단력을 키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