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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가 내려가면 사람들은 이상한 논리를 만들어냅니다. 올해 들어 반도체 섹터가 흔들릴 때마다 "결국 공급 과잉이 오는 거 아니냐"는 말이 커뮤니티와 리포트 사이를 오갔습니다. 제가 직접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을 들고 이 구간을 버텨보니, 주가와 펀더멘털이 따로 노는 시기에 가장 무서운 건 시장이 아니라 제 안의 불안이었습니다. 팩트는 달라지지 않았는데 마음이 먼저 흔들렸던 그 경험을 솔직하게 풀어보려 합니다.
쇼티지는 현실인데 주가는 왜 빠졌나
반도체 주가가 꺾이기 시작하자 제 주변에서도 "이미 피크아웃 아니냐"는 말이 나왔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빅테크들의 데이터센터 투자는 멈추지 않았고, HBM 납품 일정은 빽빽하게 차 있었는데, 주가만 마치 공급 과잉이 이미 시작된 것처럼 움직였으니까요.
시장 일각에서는 2028년 D램 공급 과잉 시나리오를 근거로 지금 당장 매도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그런데 제가 리포트들을 직접 찾아 읽어보니 일반적으로 반도체 사이클은 2~3분기 선반영이 통상적입니다. 2026년 하반기 시점에서 2028년 이슈를 5~7분기 이상 미리 반영한다는 건, 과거 어떤 사이클과 비교해도 너무 빠른 속도였습니다. 모건스탠리와 JP모건 역시 2028년 이전까지는 의미 있는 공급 확대가 없어 현 시점의 주가 하락은 이르다고 분석했습니다(출처: Morgan Stanley).
그렇다면 왜 주가는 빠진 걸까요. 제 경험상 이건 펀더멘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펀드들의 현금 비중 감소, 한국 레버리지 수급의 꼬임, 이런 수급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실제로 마이크론,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2027년 포워드 PER(주가수익비율)은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렀는데, 이는 이익 대비 주가가 그만큼 저평가됐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포워드 PER이란 현재 주가를 미래 예상 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숫자가 낮을수록 시장이 해당 기업을 싸게 평가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트렌드포스는 3분기, 4분기 D램 가격이 각각 13% 이상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고, 뱅크오브아메리카는 그보다 더 높은 상승률을 제시했습니다(출처: TrendForce). 낸드 플래시 메모리도 2026년 -15%, 2027년 -9%의 쇼티지가 예상됩니다. 최태원 SK 회장이 직접 언급했듯, 수요와 공급의 격차는 내년에 오히려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이 시장에서 제가 확인한 핵심 팩트
제가 여러 증권사 리포트와 월가 분석을 직접 비교해보며 추려낸 현재 시장의 핵심 포인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 D램 마진율이 90%에 달할 만큼 가격이 급등해 있으나, 이는 수요 초과 상태의 반영이지 거품이 아닙니다.
- 낸드 플래시를 포함한 메모리 전 품목에서 2026~2027년까지 쇼티지가 지속될 전망입니다.
-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의 컴퓨팅 용량은 2023년 51GW에서 2028년 116GW로 2배 이상 증가 예정이며, 모건스탠리는 2027~2028년 이들의 투자가 9~10% 추가 증가할 것으로 봤습니다.
- 2027년 데이터센터 CAPEX(설비투자) 내 메모리 반도체 비중은 60%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 공급 측에서 자발적으로 가격을 낮출 가능성은 낮지만, 엔비디아나 TSMC처럼 마진을 일정 수준으로 조절해 AI 생태계 전체를 키우는 방향이 장기적으로는 더 유리합니다.
HBM과 AI 수익성, 진짜 성장은 지금부터다
제가 처음 HBM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는 그냥 '비싼 메모리' 정도로만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공부해보니 이건 완전히 다른 제품군이었습니다. HBM(High Bandwidth Memory, 고대역폭 메모리)이란 GPU 칩 바로 옆에 패키징되어 함께 동작하는 특수 메모리로, 쉽게 말해 AI 가속기와 한 몸처럼 붙어서 작동하는 부품입니다. 범용 D램처럼 누가 만들어도 되는 게 아니라 고객사(엔비디아, AMD 등)의 설계에 맞춰 맞춤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락인(lock-in) 효과, 즉 고객이 쉽게 공급사를 바꾸지 못하는 의존성이 매우 강합니다.
제 경험상 기술적 해자가 두꺼운 기업에 투자했을 때와 그렇지 않은 기업에 투자했을 때는 하락장에서 심리적 버팀목 자체가 달랐습니다. HBM 시장 규모는 2026년 570억 달러에서 2027년 940억 달러로 약 1.6배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마진도 함께 올라 영업이익은 최대 2.5배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2026년까지는 D램 가격 상승이 주가 동력이었다면, 이제부터는 HBM의 가격과 물량이 동시에 올라가는 국면이 열립니다.
AI 소프트웨어 쪽 수익성도 빠르게 개선되고 있습니다. 앤스로픽은 2026년부터 흑자 전환을 시작해 2028년에는 영업이익 2,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됩니다. 현재도 매출 총이익률(Gross Margin)이 60%에 달하는데, 여기서 매출 총이익률이란 매출에서 제조·서비스 원가를 빼고 남는 비율로 높을수록 수익 구조가 탄탄하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앤스로픽은 B2B 기업 API 과금 방식으로 대기업들로부터 연간 500억~1,000억 원 이상의 사용료를 받는 구조라 매출 가시성이 높습니다. 오픈AI는 2027년 흑자 전환 예정이며 10억 명이라는 B2C 사용자 기반을 무기로 수익화를 가속할 계획입니다.
다만 제가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건, 'AI 투자는 절대 줄지 않는다'는 전제 자체에는 조건이 붙는다는 점입니다. AI 에이전트의 실제 수익화 속도가 예상보다 느려질 경우, 빅테크들이 CAPEX 집행 속도를 재검토할 가능성은 언제든 존재합니다. AI 산업의 지속 가능성은 결국 반도체 공급 여부가 아니라, AI가 만들어내는 실제 부가가치가 인프라 비용을 상회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그 지점을 놓치지 않으면서 분할 매수로 접근하는 게 지금 제가 택한 전략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지금 SK하이닉스 주가가 떨어지는 게 메모리 공급 과잉 때문인가요?
A. 제가 직접 리포트들을 비교해본 결과, 현재 주가 하락의 주원인은 공급 과잉이 아니라 펀드 수급 꼬임과 심리적 과도 선반영입니다. 2028년 공급 과잉 시나리오를 지금 당장 5~7분기 앞당겨 반영하는 건 역사적으로도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입니다. 트렌드포스는 오히려 3~4분기 D램 가격 상승을 전망하고 있습니다.
Q. HBM이 일반 D램이랑 다른 게 뭔가요?
A. 일반 D램은 규격화된 제품을 대량생산해서 누구에게나 팔 수 있지만, HBM은 GPU 칩 옆에 직접 패키징되는 맞춤형 부품입니다. 고객사 설계에 맞춰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공급사를 쉽게 바꾸기 어렵고, 이로 인해 SK하이닉스 같은 선점 기업의 기술적 해자가 매우 깊습니다.
Q. 앤스로픽이 오픈AI보다 수익성이 더 좋다는 게 사실인가요?
A. 현 시점 기준으로는 그렇게 볼 여지가 있습니다. 앤스로픽은 B2B 기업 API 종량제 매출이 압도적이라 매출 총이익률이 60%로 오픈AI(40%)보다 높고, 흑자 전환 시점도 더 빠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만 오픈AI는 10억 명 사용자 기반이라는 스케일이 있어 장기 수익화 잠재력은 열려 있습니다.
Q. 메모리 다음으로 어떤 부품이 병목이 될까요?
A. 현재 분석들을 종합하면 기판과 광통신이 다음 병목으로 꼽힙니다. 구체적으로는 광케이블, MLCC(적층 세라믹 커패시터), ABF(반도체 기판용 절연 필름), PCB 기판 등에서 2027년 상반기까지 공급 부족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메모리 이후의 투자 기회를 찾는다면 이 부품군을 눈여겨볼 만합니다.
결론
팩트와 주가를 분리해서 보는 훈련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습니다. 제가 직접 이 구간을 버텨보면서 배운 건, 시장의 공포가 가장 클 때 펀더멘털을 다시 읽는 습관이 투자자에게 가장 필요한 근육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D램과 낸드의 쇼티지는 현실이고, HBM 성장은 이제 막 본격 궤도에 올랐으며, AI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수익성도 숫자로 증명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CAPEX 감속이나 AI 수익화 지연이라는 변수는 항상 열어두고 봐야 합니다. 지금 저는 불확실성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 불확실성을 인정한 채로 분할 매수를 이어가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메모리 다음으로는 기판과 광통신 섹터까지 시야를 넓혀두는 것이 다음 숙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