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중국이 노광 장비를 만들었다는 소식 하나에 코스피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됐습니다. 삼성전자가 하루에 13%, SK하이닉스가 14% 빠지는 걸 보면서, 저는 이게 기술 붕괴의 신호인지 아니면 시장이 또 한 번 패닉 셀링(Panic Selling)에 빠진 건지 판단하고 싶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생산량과 성능의 실체를 보면 볼수록 이번 반응은 조금 달리 읽혔습니다.
DUV 장비 5대가 불러온 서킷 브레이커, 진짜 이유는 뭔가
중국 상하이 아이성 전자 기술 그룹이 액침 DUV(Deep Ultraviolet) 노광 장비를 자체 생산했다는 뉴스가 시장을 강타했습니다. 여기서 액침 DUV란, 웨이퍼에 회로 무늬를 빛으로 찍어 누르는 노광(Lithography) 공정에 쓰이는 장비로, 렌즈와 웨이퍼 사이를 물로 채워 빛의 굴절을 높이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도장 역할을 하는 핵심 장비입니다.
문제는 숫자입니다. 중국이 올해 생산한다는 수량은 5대, 내년 목표는 20대입니다. 반면 이 분야의 압도적 독점 기업인 ASML(출처: ASML 공식 홈페이지)의 올해 액침 DUV 생산 목표는 약 130대, 내년에는 169대입니다. 절대량으로만 보면 중국 장비는 시장의 3% 수준에도 못 미칩니다.
그럼에도 시장이 이렇게 반응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저는 과거에도 특정 부품의 국산화 발표 하나에 관련 종목이 당일 10% 이상 빠지는 장면을 여러 번 봤습니다. 그때마다 뒤를 따라가 보면, 국산화 성공 선언과 양산 검증 사이에는 수년의 시간차와 수율(양품 비율)의 벽이 존재했습니다. 이번에도 저는 그 간극을 먼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하락의 더 큰 맥락 중 하나는 창신 메모리 테크놀로지(CXMT)의 상하이 증시 상장입니다. 상장 첫날 주가가 460% 폭등하며 시가총액 488억 달러를 기록했고, 이 뉴스가 글로벌 자금이 중국 메모리 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수급 우려까지 겹쳤습니다. 기술 뉴스와 자금 이동 우려가 동시에 터지면서 심리적 충격이 배가된 셈입니다.
- 중국 액침 DUV 생산량: 2025년 5대, 2026년 20대 계획
- ASML 액침 DUV 생산량: 2025년 약 130대, 2026년 약 169대
- 창신 메모리 상장 첫날 주가 460% 폭등, 시가총액 488억 달러
- 코스피 서킷 브레이커 발동, 삼성전자 -13%, SK하이닉스 -14%
DUV 장비의 기술적 한계, 시장은 얼마나 제대로 읽었나
이번 반응을 보면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시장이 기술적 디테일을 이렇게까지 무시할 수 있다는 사실이요. DUV 장비는 빛의 파장 특성 때문에 한 번 노광으로 구현 가능한 최소 선폭이 28나노(nm) 수준입니다. 여기서 선폭(線幅)이란 회로 선의 굵기로, 이 수치가 작을수록 더 많은 회로를 같은 면적에 집적할 수 있어 성능이 높아집니다.
7나노 이하 첨단 공정으로 내려가려면 DUV 장비로 동일한 면적을 여러 번 겹쳐 노광하는 다중 패터닝(Multi-Patterning) 방식을 써야 하는데, 이 경우 공정 단계가 복잡해지면서 수율이 심하게 불안정해집니다. 글로벌 업계가 DUV 다중 패터닝 대신 EUV(극자외선) 노광 장비로 전환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UV는 파장이 훨씬 짧아 한 번에 더 미세한 회로를 찍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중국이 EUV 장비를 수입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미국 주도의 수출 규제로 EUV 장비는 중국 반입 자체가 막혀 있습니다. 결국 중국이 자체 개발한 DUV 장비가 실질적으로 메울 수 있는 영역은 28나노 이상의 성숙 공정(Mature Process)입니다. 성숙 공정이란 최신 첨단 공정이 아닌, 이미 기술이 안정화된 기존 세대 공정을 뜻합니다.
중국은 이미 성숙 공정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고, 이 시장은 스마트폰용 저가 칩, 자동차 반도체, 가전 제품에 주로 쓰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집중하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혹은 최첨단 D램과는 시장 자체가 다릅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경쟁하는 링이 아닌 셈입니다. 실제로 KB증권은 창신이 한국 반도체 기업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단기적으로 미미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출처: KB증권).
다만 이 판단에도 반론이 있다는 점은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창신은 중국산 장비 없이도 2020년 월 4만 장이던 생산량을 올해 말 기준 35만 장까지 늘렸습니다. 영업이익률 역시 마이크론, 삼성전자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커진 경쟁자를 시장이 이제야 제대로 인식한 것일 수도 있다는 시각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매치 액트 법안과 ASML, 진짜 리스크는 어디에 있나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시장이 가장 크게 반응한 트리거는 중국 DUV 5대짜리 뉴스였지만, 실제로 ASML 매출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는 따로 존재합니다. 바로 미국 의회에서 3개월째 계류 중인 매치 액트(MATCH Act) 법안입니다.
매치 액트란 중국의 반도체 기업인 창신, SMIC, 화웨이 등에 대한 장비 수출과 서비스, 기술 지원을 전면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법안입니다. 단순히 장비 판매를 막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납품된 장비의 유지보수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부품 교체까지 제한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광 장비는 한 번 설치한다고 끝이 아닙니다. 빛의 파장을 정밀하게 조정하는 보정(Calibration) 작업, 소모 부품 교체, 소프트웨어 갱신이 지속적으로 필요합니다. 이 서비스·유지보수 매출이 ASML의 핵심 수익원 중 하나인데, 매치 액트가 통과되면 이 부분이 통째로 날아갈 수 있습니다. 추산으로는 ASML 전체 매출의 약 14~15% 감소가 예상됩니다. 반면 중국 DUV 20대가 ASML 매출에 미치는 영향은 약 2.4%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시장은 2.4% 짜리 중국 장비 뉴스에 더 크게 반응했습니다. 이미 확인된 위험보다 '상징적인 공포'가 더 강력하게 작동하는 자본 시장의 특성이 이번에도 고스란히 드러난 셈입니다. ASML의 중국 매출 비중은 2025년 1분기 기준 이미 36%에서 19%로 축소된 상태로, 규제의 효과는 이미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습니다.
한편, 펀드 매니저 설문 결과에서 반도체 매수 포지션이 역사상 최고치에 몰려 있다는 점도 이번 하락의 배경을 설명합니다.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린 시장 포지션은 작은 트리거에도 급격한 되돌림을 만들어냅니다. 매치 액트 법안이 네덜란드의 항의와 업계 로비로 서비스 조항이 약화되면서 계류 상태인 만큼, 이 불확실성은 당분간 시장 위에 얹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중국이 DUV 장비를 만들었으면 이제 ASML 없이도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건가요?
A. 당장은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올해 5대, 내년 20대 수준의 생산량은 ASML의 130~169대와 비교해 압도적으로 적고, 성능도 한 세대 이상 뒤처집니다. 게다가 핵심 부품 일부는 여전히 일본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다만 장기적으로 자급 비중을 높여가는 방향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Q. 이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하락은 저가 매수 기회인가요?
A. 저는 이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한쪽에서는 중국의 D램 증설이 실제 영향을 주려면 2027년 이후는 되어야 한다며 과도한 반응이라고 보고, 다른 쪽에서는 창신의 현재 성장 속도 자체가 이미 무시할 수 없는 경쟁 신호라고 해석합니다. 어느 쪽이든 AI 시장의 장비·메모리 수요 자체는 여전히 견고하다는 점은 공통된 시각입니다.
Q. 매치 액트 법안이 통과되면 ASML에 얼마나 타격인가요?
A. 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된다면 ASML 전체 매출의 약 14~15% 감소가 예상됩니다. 서비스·유지보수 조항이 포함되면 이미 중국 팹에 설치된 장비의 유지 지원까지 막히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네덜란드 정부의 항의와 업계 로비로 서비스 조항이 약화된 채 3개월째 의회에 계류 중입니다.
Q. EUV와 DUV, 뭐가 다른 건가요?
A. EUV(극자외선)는 DUV(심자외선)보다 훨씬 짧은 파장의 빛을 사용합니다. 파장이 짧을수록 더 미세한 회로를 한 번에 새길 수 있어 5나노, 3나노 같은 첨단 공정에 필수적입니다. DUV로도 7나노 공정을 만들 수는 있지만 여러 번 겹쳐 노광해야 해서 공정이 복잡해지고 수율이 떨어집니다. 중국은 현재 EUV 장비를 수입할 수 없어 이 격차가 구조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결론
제가 직접 이번 사태를 들여다보며 든 생각은 이렇습니다. 현재 반도체 시장의 고민은 "반도체가 안 팔린다"가 아닙니다. 너무 잘 팔리는 시장에 중국이라는 새 플레이어가 점점 덩치를 키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파이가 커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경쟁이고, 이 긴장감은 몇 년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하락이 펀더멘털의 훼손이라기보다는, AI 버블에 대한 불안감이 누적된 상황에서 중국 DUV 뉴스가 방아쇠를 당긴 심리적 붕괴에 가깝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다만 창신의 성장 속도와 매치 액트 법안의 불확실성은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야 할 변수입니다. 단기 반응에 흔들리기 전에, 기술적 실체와 시간축을 나눠 읽는 습관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