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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드러켄밀러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는 거의 실패하지 않는 투자자라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거시경제 흐름을 읽고 과감하게 베팅하면서도 틀리면 빠르게 포지션을 바꾸는 사람,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닷컴 버블 당시의 실패를 자세히 보니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시장이 어려워서 틀린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기술주가 버블이라는 걸 누구보다 먼저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계속 돈을 버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원칙을 스스로 버렸다는 데 있었습니다.
러시아 금융위기에서 20억 달러를 잃고도 살아남았던 이유
드러켄밀러의 실패 이야기는 2000년 닷컴 버블만 보면 조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보다 앞선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를 같이 보면 왜 이후의 실패가 더 충격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러시아가 채무불이행과 루블화 평가절하를 선언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유명 헤지펀드 LTCM까지 파산 위기에 몰렸고, 시장 전체가 패닉에 빠졌습니다.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 역시 큰 손실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드러켄밀러가 운용하던 포지션에서도 약 20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정도 손실이면 일반적인 투자자라면 투자 판단 자체가 흔들릴 만한 규모입니다.
그런데 이때 드러켄밀러의 대응은 오히려 그의 장점을 정확하게 보여줬습니다.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하자 손실을 인정하고 포지션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손실을 만회하려고 같은 자리에서 계속 버티기보다 다른 기회를 찾았습니다.
결과적으로 큰 손실을 겪고도 그해 퀀텀펀드는 플러스 수익률로 마무리했습니다. 제가 이 사례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본 것은 손실을 얼마나 빨리 만회했느냐보다, 큰돈을 잃은 직후에도 자신의 자존심과 포지션을 분리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도 손실이 커지면 종목보다 감정부터 보게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내가 틀릴 리가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이미 판단이 흐려지고 있다는 신호였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1998년의 드러켄밀러는 적어도 그 부분에서는 굉장히 냉정했습니다.
1999년, 버블을 정확히 봤는데도 6억 달러를 잃었습니다
1999년 나스닥은 이미 몇 년째 강하게 오르고 있었고 닷컴 기업들의 밸류에이션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드러켄밀러는 이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됐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기술주를 매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 2억 달러 규모의 공매도 포지션을 만들었습니다. 방향 자체는 훗날 맞았지만 문제는 시점이었습니다.
버블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오래 갔습니다. 기술주는 계속 상승했고 공매도 손실도 빠르게 불어났습니다. 한두 달 사이 손실 규모가 약 6억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공매도의 어려움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어떤 자산이 비싸다는 판단이 맞더라도 '언제 떨어질 것인가'까지 맞혀야 합니다. 일반 주식 매수는 기업이 성장하면 시간을 기다릴 수 있지만 공매도는 시장이 계속 올라갈수록 손실이 확대되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그래도 이 시점까지 드러켄밀러는 자신의 원칙을 지켰습니다. 시장이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6억 달러 손실을 감수하면서 포지션을 정리했습니다.
저는 오히려 여기까지는 실패라고만 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투자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고, 틀렸을 때 손실을 제한하고 다시 판단하는 것이 투자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부터 시작됐습니다.
자신보다 어린 트레이더가 돈을 버는 순간 원칙이 무너졌습니다
공매도 실패 이후 드러켄밀러가 취한 행동은 상당히 합리적이었습니다. 자신이 당시 신기술 기업과 닷컴 시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젊은 기술주 트레이더들을 고용했습니다.
문제는 이 젊은 트레이더들이 너무 잘했다는 겁니다.
이들은 당시 시장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기술주를 적극적으로 매매하면서 큰 수익을 냈고, 퀀텀펀드의 성과를 다시 끌어올렸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드러켄밀러 개인에게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수십 년 동안 월가 최고의 투자자로 평가받았던 자신은 기술주를 공매도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봤는데, 경험이 훨씬 적은 젊은 트레이더들은 자신이 버블이라고 판단한 시장에서 계속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질투, FOMO(Fear Of Missing Out), 자존심이라는 감정이 섞이기 시작합니다. FOMO란 다른 사람들이 돈을 버는 동안 나만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을 말합니다.
저도 투자하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내가 보유한 종목은 움직이지 않는데 커뮤니티에서 다른 사람들의 수익 인증이 계속 올라오면 원래 세웠던 투자 계획이 갑자기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평소라면 절대 사지 않을 가격인데도 '나만 못 먹고 있다'는 이유로 매수하고 싶어집니다.
드러켄밀러처럼 수십 년 동안 성공한 투자자조차 이 감정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점이 저는 오히려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원칙을 버리자 오히려 수익률은 좋아졌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드러켄밀러가 원칙을 버리고 기술주 상승에 올라탄 직후에는 결과가 좋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결국 기술주를 매수하기 시작했고, 1999년 초 한때 마이너스였던 수익률은 연말에 큰 폭의 플러스로 반전됐습니다. 숫자만 보면 판단을 바꾼 것이 정답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투자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행동이 즉시 손실로 돌아오면 오히려 고치기 쉽습니다. 반대로 원칙을 어겼는데 돈을 벌면 그 행동이 강화됩니다.
평소에는 추격매수를 하지 않다가 한 번 급등주를 따라 샀는데 20%를 벌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다음부터는 '나는 흐름을 잘 탄다'는 생각이 생깁니다. 몇 번 더 성공하면 처음에 왜 추격매수를 피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됩니다.
드러켄밀러도 비슷했습니다. 버블이라고 생각했던 시장에 결국 올라탔고 그 선택으로 실제 수익을 냈습니다. 문제는 이 성공이 그다음 판단의 자신감을 과도하게 키웠다는 데 있었습니다.
원칙을 어긴 행동으로 돈을 번 경험이 결국 훨씬 큰 리스크를 감수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셈입니다.
2000년 3월, 시장 고점에서 60억 달러를 넣었습니다
2000년 초 드러켄밀러는 다시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됐다고 판단했습니다. 소로스와 논의한 뒤 기술주 포지션을 정리하기로 결정했고 실제로 상당 부분 매도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과거의 실수를 정리하고 다시 원칙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옆자리였습니다. 자신이 기술주를 팔고 있는 동안 젊은 트레이더들은 계속 기술주로 큰 수익을 내고 있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퍼센트씩 수익이 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했습니다.
결국 2000년 3월 드러켄밀러는 다시 기술주 시장에 들어갔습니다. 그것도 소규모가 아니었습니다. 약 60억 달러 규모의 기술주를 한꺼번에 매수했습니다.
그리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타이밍이 나빴습니다. 나스닥이 역사적인 고점을 형성하던 시기와 거의 겹쳤고 이후 기술주는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약 30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번의 판단으로 수조원 규모의 자금이 사라진 겁니다.
그가 시장을 몰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점이 더 충격적입니다. 오히려 그는 기술주가 버블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미 한 번 빠져나오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문제는 분석이 아니라 자신의 분석대로 행동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30억 달러 손실보다 더 무서운 건 투자 판단에 자존심이 들어가는 순간
드러켄밀러는 이후 이 시기를 회고하면서 자신도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여러 차례 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기술주가 지나치게 비싸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감정적으로는 계속 올라가는 시장을 견디지 못했던 겁니다.
저는 이 사례에서 밸류에이션이나 공매도 방법보다 훨씬 중요한 걸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투자에서는 내가 얼마나 똑똑한지를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계좌 수익률이 다른 사람과 비교되기 시작하면 투자 목적이 조금씩 변합니다.
처음에는 돈을 벌기 위해 투자했는데 어느 순간 '저 사람보다 내가 잘해야 한다'는 문제가 됩니다. 내가 판 종목이 계속 오르면 시장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친구가 산 종목이 급등하면 원래 관심도 없던 기업인데 따라 사고 싶어집니다.
그 순간부터 투자 판단의 기준이 기업 가치나 확률이 아니라 자존심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드러켄밀러처럼 전설적인 투자자조차 수십 년의 경험으로 이 감정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개인 투자자가 감정만으로 버텨내겠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현실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정을 없애려고 하기보다 감정이 개입됐을 때 행동하지 않을 규칙을 만드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추격매수를 하고 싶다면 하루 기다린다거나, 한 번의 신규 투자 비중을 일정 수준 이상 넘기지 않는 식입니다.
잘하는 투자자도 자기 약점 때문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드러켄밀러의 성격을 보면 또 하나 흥미로운 역설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판단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투자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계속 생각했고, 시장이 예상과 다르면 빠르게 포지션을 바꿨습니다.
이런 성향은 오랫동안 그의 강점으로 작용했습니다. 강한 확신을 가지면서도 시장이 다르게 움직이면 자기 생각을 수정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닷컴 버블에서는 바로 그 성향이 반대로 작동했습니다. 자신이 기술주 버블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계속 돈을 벌자 '혹시 내가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의심이 커졌습니다.
결국 자신을 의심하는 능력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장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성과에 흔들리는 약점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도 투자에서 장점과 단점을 완전히 따로 떼어놓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확신이 강한 사람은 큰 기회에서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지만 고집으로 이어질 수 있고, 신중한 사람은 큰 손실을 줄일 수 있지만 좋은 기회를 계속 놓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투자 성향이 최고인지 찾는 게 아니라 내 성향이 어떤 상황에서 문제를 만들 수 있는지 미리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는 남의 돈을 돌려주고 자기 돈만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닷컴 버블 이후 드러켄밀러는 소로스와 결별하고 자신의 듀케인 펀드 운용에 집중했습니다. 이후에도 좋은 성과를 이어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운용자산이 수십억 달러 단위로 커지자 예전처럼 작은 기회를 자유롭게 잡기 어려워졌습니다. 개인 투자자라면 몇억원만 투자해도 충분한 소형주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펀드는 의미 있는 비중을 투자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수십 년 동안 외부 투자자의 돈을 관리하면서 매년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도 계속됐습니다.
결국 2010년 그는 외부 투자자의 자금을 돌려주고 듀케인 펀드를 폐쇄했습니다. 이후 패밀리 오피스 형태로 자신의 자본을 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결정도 꽤 흥미롭습니다. 더 많은 돈을 운용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규모를 줄이고 자유를 선택했습니다. 외부 투자자가 없으니 매 분기 성과를 보여줄 필요도 없고 마음에 드는 기회가 없으면 그냥 현금을 들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결국 좋은 투자 환경을 만드는 것도 투자 능력의 일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 수익률을 보여줘야 하는 환경과 10년을 기다릴 수 있는 환경에서는 같은 사람도 전혀 다른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드러켄밀러는 닷컴 버블이 올 것을 몰랐던 건가요?
A. 오히려 반대에 가깝습니다. 그는 기술주가 과도하게 비싸다고 판단해 1999년 공매도까지 했고, 2000년 초에는 기술주를 매도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버블 판단이 아니라 버블이 계속되는 동안 주변 투자자들의 수익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시장에 들어갔다는 점이었습니다.
Q. 드러켄밀러는 실제로 얼마를 잃었나요?
A. 닷컴 버블 당시 기술주 투자 실패로 약 30억 달러 규모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확한 손실 규모는 집계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의 투자 경력에서 가장 큰 실패 중 하나였다는 점에는 큰 이견이 없습니다.
Q. 그러면 다른 사람이 수익 낼 때는 그냥 무시해야 하나요?
A. 다른 투자자의 성과에서 배울 것은 분명 있습니다. 다만 상대방의 수익 자체가 내 매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정보를 확인하고 내 기존 가설이 틀렸다면 바꾸는 것은 합리적이지만, 단순히 남이 돈을 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투자 원칙을 바꾸면 FOMO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Q. FOMO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감정을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대신 신규 매수 전 투자 이유를 적어두고, 하루 급등만으로는 추격매수하지 않는다거나 한 종목 최대 비중을 미리 정하는 식으로 행동 규칙을 만드는 방법이 현실적입니다. 감정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보다 감정이 생겼을 때 포지션 크기가 폭발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결론
드러켄밀러의 닷컴 버블 실패를 처음 봤을 때는 단순히 거장도 고점에 물릴 수 있다는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훨씬 불편한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그는 시장을 몰랐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버블을 미리 알아봤고, 공매도를 했다가 틀렸을 때 손절했고, 다시 기술주를 매도하는 판단까지 했습니다. 해야 할 행동을 거의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가장 비싼 순간에 다시 기술주를 샀습니다. 이유는 새로운 기업 분석이나 경제지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이 옆에서 계속 돈을 버는 모습을 더 이상 견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례를 보고 나니 투자에서 가장 무서운 리스크는 분석 부족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질투, 조바심, 체면, 본전 생각처럼 숫자로 표시되지 않는 감정이 오히려 큰 포지션을 만들 때가 있습니다.
저도 이제 다른 사람의 수익을 보고 갑자기 사고 싶은 종목이 생기면 하나를 먼저 생각합니다. "이 종목을 오늘 처음 봤는데도 사고 싶은 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돈을 벌었기 때문에 사고 싶은 건가?"
두 번째라면 아무리 좋은 종목처럼 보여도 한 번 더 기다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에서 돈을 버는 것도 어렵지만, 내 감정 때문에 이미 가지고 있던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리지 않는 건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