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강세장에서 수익이 나면 "이번엔 더 크게 넣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이 얼마나 위험한지, 하락장이 오고 나서야 뼈저리게 알았습니다. 정보 이론의 창시자 클로드 섀넌과 수학자 에드워드 소프가 도박과 시장을 연구하며 도달한 결론은 단순했습니다. 얼마를 베팅하느냐가 무엇에 투자하느냐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
켈리 공식: 파산을 막는 배팅 사이즈의 수학
저는 한때 투자에서 '얼마나 넣느냐'보다 '어디에 넣느냐'에만 집착했습니다. 리포트를 읽고, 차트를 분석하고, 다음 분기 실적을 예측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노력이 수익으로 이어진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확신이 클수록 한 종목에 비중을 몰았고, 그때마다 크게 손실을 봤습니다.
켈리 공식(Kelly Criterion)은 이 문제에 수학적으로 답을 줍니다. 여기서 켈리 공식이란, 복리로 자산을 가장 빠르게 불릴 수 있는 최적의 배팅 비율을 계산하는 공식입니다. 1956년 벨 연구소의 존 켈리가 개발했으며, 핵심은 단순합니다. 이길 확률이 60%인 게임이라면, 전 재산의 20%만 베팅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자산을 가장 빠르게 불리는 비율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파산의 수학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파산의 수학이란, 아무리 큰 자산도 단 한 번 '0'에 베팅하는 순간 자산 전체가 0이 된다는 수학적 원리입니다. 100번 이겨도 마지막에 전 재산을 잃으면 결과는 0입니다. 올인은 확률적으로 언젠가 반드시 파산에 이르게 됩니다. 제가 강세장에서 비중을 과도하게 높였다가 하락장에 큰 손실을 본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정확히 이 원리를 무시한 결과였습니다.
에드워드 소프는 켈리 공식을 주식 시장에 적용하면서 한 가지를 더했습니다. 주식 시장은 블랙잭 테이블보다 변수가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그는 켈리 공식이 제시하는 비율의 절반만 베팅하는 하프 켈리(Half Kelly)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하프 켈리란, 계산된 최적 배팅 비율을 절반으로 줄여 예측 불가능한 시장 변수에 대비하는 보수적 운용 방식입니다. 1987년 블랙먼데이 당시 대부분의 운용사가 파산했을 때 소프의 펀드가 살아남은 것은 이 전략 덕분이었습니다(출처: 에드워드 소프 저 『Beat the Market』).
켈리 공식이 강조하는 또 다른 원칙은 현금 보유입니다. 예측이 불가능한 시장에서 현금을 전부 소진하는 것은, 수학적으로 자산을 0으로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항상 일정 비율의 현금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켈리 공식의 가장 실용적인 교훈입니다. 저도 이 원칙을 받아들인 이후부터 비로소 하락장에서 패닉 셀 없이 버틸 수 있게 됐습니다.
- 켈리 공식: 이길 확률이 60%라면 전 재산의 20%만 베팅하는 것이 복리 성장 최적 비율
- 파산의 수학: 단 한 번의 전 재산 베팅으로 자산이 0이 될 수 있음 — 올인은 절대 금지
- 하프 켈리: 시장의 불확실성을 고려해 계산 비율의 절반만 투입하는 보수적 전략
- 현금 보유: 예측 실패 가능성을 인정하는 겸손함이자 생존의 조건
섀넌의 도깨비와 하프 켈리: 시스템이 감정을 이긴다
클로드 섀넌은 모든 정보를 0과 1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정보 이론(Information Theory)을 창시한 인물입니다. 여기서 정보 이론이란, 데이터를 이진 신호로 변환하고 전송하는 원리를 수학적으로 정립한 학문으로, 오늘날 디지털 세상 전체의 토대를 이룹니다. 저글링과 외발자전거를 즐기며 도박의 확률을 연구한 이 천재는, 주식 시장에서도 독창적인 전략을 개발했습니다.
섀넌의 도깨비(Shannon's Demon)는 이름만큼이나 흥미로운 리밸런싱 전략입니다. 리밸런싱(Rebalancing)이란, 자산 비율이 변동했을 때 목표 비율로 기계적으로 되돌리는 행위입니다. 섀넌의 전략은 간단합니다. 자산의 50%는 주식, 50%는 현금으로 유지하되, 주식이 오르면 일부를 팔아 현금을 채우고, 주식이 떨어지면 현금으로 주식을 삽니다. 이 기계적 규칙만 따르면, 시장이 전혀 오르지 않고 박스권에서 횡보하더라도 복리 효과로 수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전략의 핵심입니다(출처: Wikipedia - Shannon's demon).
제가 이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시장이 오르지도 않는데 수익이 난다는 것이 직관적으로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원리를 이해하고 나니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주가가 50에서 100으로 오르면 팔아서 현금 비율을 맞추고, 다시 50으로 내려오면 저가에 매수합니다. 이 기계적 행동이 반복될수록 평균 단가는 낮아지고, 자산은 서서히 불어납니다.
물론 한계도 있습니다. 변동성 드래그(Volatility Drag)라는 문제입니다. 변동성 드래그란, 자산 가격이 등락을 반복할수록 산술 평균 수익률과 실제 복리 수익률 사이의 간격이 벌어져 수익이 깎이는 현상입니다. 레버리지 ETF처럼 변동성이 극단적으로 큰 상품에 섀넌의 도깨비를 적용하면 오히려 원금이 녹아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상승장에서는 바이앤홀드(Buy and Hold), 즉 사두고 내버려두는 전략이 리밸런싱보다 수익률이 높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문제는 지금이 상승장인지 횡보장인지, 아무도 미리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결국 섀넌과 소프가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감정을 배제한 기계적 규칙입니다. 시세를 자주 보면 논리적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 대신, 공포와 탐욕에 반응하는 변연계가 작동하게 됩니다. 전업 투자자들 중에도 하루 한 번만 시세를 확인하는 규칙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시세를 멀리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매매 빈도가 줄고, 오히려 수익률이 안정됐습니다. 규칙을 시장 상황에 따라 바꾸는 것은, 결국 시장에 휘둘리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켈리 공식은 주식 투자에 그대로 적용하면 되나요?
A. 주식 시장은 카지노보다 변수가 훨씬 많아서 그대로 적용하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에드워드 소프는 이 점을 감안해 켈리 공식이 제시하는 비율의 절반만 투입하는 하프 켈리를 사용했습니다. 계산된 최적 비율보다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Q. 섀넌의 도깨비 전략, 지금 시장에서도 효과 있나요?
A. 과거에는 높은 매매 수수료 때문에 적용이 어려웠지만, 현재는 낮은 거래 비용 덕분에 현실성이 높아졌습니다. 다만 강한 상승장에서는 바이앤홀드보다 수익률이 낮을 수 있고, 레버리지 ETF처럼 변동성이 극단적으로 큰 상품에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Q. 현금 비중은 얼마나 유지하는 게 맞나요?
A. 정해진 정답은 없지만, 켈리 공식과 섀넌의 도깨비 모두 일정 비율의 현금을 반드시 보유하라고 강조합니다. 시장이 예측 불가능한 이상, 현금 보유는 수익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파산을 막는 생존 장치입니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비율만큼 현금을 남겨두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Q. 리밸런싱은 얼마나 자주 해야 하나요?
A. 섀넌의 도깨비는 자산 비율이 목표에서 벗어날 때마다 기계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너무 잦은 매매는 수수료 비용을 높이고, 너무 드물면 전략의 효과가 줄어듭니다. 월 1회 또는 비율이 일정 이상 벗어났을 때 조정하는 방식으로 운용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결론
제가 투자에서 가장 크게 잘못 이해했던 것은, 좋은 종목을 고르는 것이 투자의 전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섀넌과 소프의 연구를 접하고 나서야, 자산을 지키는 것은 '무엇을'이 아니라 '얼마나'와 '언제'의 문제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켈리 공식이 보여주는 배팅 사이즈 관리와 섀넌의 도깨비가 제시하는 기계적 리밸런싱, 이 두 가지를 원칙으로 삼은 이후 저는 하락장에서도 이전만큼 흔들리지 않게 됐습니다.
화려한 기법보다 단순하고 기계적인 시스템이 오래 살아남습니다. 시세를 덜 보고, 현금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비율이 무너지면 기계처럼 조정하는 것. 이것이 천재들이 수십 년의 연구 끝에 도달한 결론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거창한 전략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킬 수 있는 원칙 하나를 만들고 그것을 감정 없이 따르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