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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금 통장 하나 들고 '이 정도면 됐지' 싶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금융이란 건 어렵고 복잡한 세계이고, 전문가를 믿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2008년 대침체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월가가 설계한 파생상품 구조와 신용평가사의 도덕적 해이가 어떻게 아무 죄 없는 서민들의 삶을 무너뜨렸는지, 직접 들여다보고 정리한 내용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MBS — "안전하다"는 말의 무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대침체의 뇌관이 거창한 국제 음모가 아니라, 주택 담보 대출이라는 아주 일상적인 금융 거래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이요.
모기지(Mortgage)란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주택 담보 대출 방식입니다. 여기서 모기지란 집을 구매할 여력이 없는 사람이 집을 담보로 장기간 원리금을 갚아나가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1970년대 말, 투자은행 살로먼 브라더스의 루이스 라니엘리는 이 모기지 채권 수천 개를 한 덩어리로 묶어 투자 상품으로 만들어 팔았습니다. 이것이 MBS(주택저당증권)입니다. MBS란 은행이 보유한 모기지 채권을 증권화해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파생상품으로, 은행은 대출 자산을 현금화하고 투자자는 이자 수익을 얻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2001년부터 시작됩니다. 닷컴 버블 붕괴와 9·11 테러가 겹치면서 미국 경제가 흔들리자, 부시 행정부는 금리를 대폭 낮추고 부동산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내 집 마련 정책'을 밀어붙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브프라임(Subprime) 계층, 즉 신용 등급이 낮아 일반적으로는 대출이 어려운 저신용자들에게까지 모기지 대출이 무분별하게 확대됐습니다. 은행들은 MBS를 더 많이 팔기 위해 대출 심사를 사실상 포기했고, 브로커를 고용해 대출자를 직접 찾아다니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금융 상품을 가입할 때 약관 한 줄 꼼꼼히 읽기보다 은행원이 "이거 안전해요, 수익률도 좋아요"라는 말 한마디에 도장을 찍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서민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정부가 권장하는 '내 집 마련'이라는 구호, 그리고 금융기관의 자신감 있는 설명 앞에서 세부 리스크를 따지기란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 월가는 트렌치(Tranche) 기법을 도입했습니다. 트렌치란 MBS를 위험도에 따라 상·중·하위 등급으로 나누어 각각 다른 투자자에게 파는 구조 분리 방식을 말합니다. 상위 트렌치는 하위 트렌치가 먼저 손실을 흡수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논리였습니다. 문제는 신용평가사들이 이 서브프라임 MBS 상위 트렌치에 트리플 A(AAA) 등급을 부여했다는 점입니다. AAA 등급이란 원래 미국 국채 수준의 최고 안전 등급으로, 사실상 부도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수수료를 받는 신용평가사가 발행사의 눈치를 보며 부실 상품에 최고 등급을 찍어준 셈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신용평가사는 독립적이고 객관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평가 수수료를 발행사에게 받는 구조적 이해충돌이 존재했습니다.
- 모기지(Mortgage): 집을 담보로 한 장기 주택 담보 대출
- MBS(주택저당증권): 모기지 채권을 묶어 증권화한 파생상품
- 서브프라임(Subprime): 신용 등급이 낮아 대출 위험도가 높은 저신용자 계층
- 트렌치(Tranche): MBS를 위험도별로 분리해 판매하는 구조 기법
- AAA 등급: 신용평가사가 부여하는 최고 안전 등급, 미국 국채와 동급으로 간주됨
CDO·CDS·합성 CDO — 리스크를 증폭한 파생상품의 끝
이 부분을 처음 접했을 때, 저도 솔직히 이해하는 데 한참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해하고 나니 더 무서웠습니다. 단순히 돈을 잃는 수준이 아니라, 손실이 기초 자산 규모를 아득히 초월하는 구조가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MBS에서 팔리지 않은 하위 등급 트렌치들을 다시 한데 긁어모아 새로 묶은 상품이 CDO(부채담보부증권)입니다. CDO란 여러 채권의 하위 등급 조각들을 재조합해 새로운 증권으로 만든 파생상품으로, 이미 한 번 걸러진 불량 자산을 다시 포장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놀라운 건 신용평가사들이 이 CDO에도 AAA 등급을 부여했다는 사실입니다. 이후 CDO를 또 다시 묶은 CDO 스퀘어드, 그것을 또 묶은 CDO 큐빅까지 등장했습니다.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내부의 위험은 보이지 않게 됩니다.
여기에 최종 병기가 더해집니다. 합성 CDO(Synthetic CDO)입니다. 합성 CDO란 실제 채권 자산이 아닌 CDS(신용부도스왑)라는 금융 계약만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파생상품입니다. CDS란 채권이 부도났을 때 원금을 보상받을 수 있는 일종의 보험 계약입니다. 그런데 월가는 이 CDS를 보험이 아닌 투기 수단으로 활용했습니다. 하나의 채권에 이론상 무제한으로 CDS를 발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100만 달러짜리 채권이 부도나면 그 채권에 걸린 CDS의 총합이 조 단위를 넘는 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제가 직접 이 구조를 파악하면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일반적으로 파생상품은 리스크를 분산하는 도구로 알려져 있지만, 합성 CDO는 리스크를 분산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떠넘기고 그 규모를 무한히 증폭시켰습니다. 월가는 이를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리스크가 통제된 상품'이라고 홍보했고, AIG 같은 거대 보험사도 합성 CDO의 CDS를 팔다가 결국 파산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2007년 하반기, 변동금리로 전환된 모기지의 이자 부담을 감당 못한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연체율이 폭등하자 MBS와 CDO는 순식간에 휴지 조각이 됐습니다. 베어스턴스 헤지펀드가 파산하고, 2008년 리먼 브라더스가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파산을 기록했습니다. 워싱턴 뮤추얼이 뒤를 따랐고, AIG는 연방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간신히 살아남았습니다. 세계은행(World Bank) 자료에 따르면 이 충격은 유럽·아시아로 번져 2009년 세계 경제 성장률은 7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출처: World Bank).
미국에서 수천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수백만 명이 집을 잃었습니다. 정작 이 파생상품의 존재조차 몰랐던 서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반면 구제금융을 받은 AIG의 임원들은 파산 위기 직후에도 막대한 성과급을 챙겼고, 월가의 금융기관들은 이미 부실임을 알고 있던 MBS와 CDO를 일반 투자자에게 안전한 상품이라며 팔려 했습니다. IMF(국제통화기금) 분석에 따르면 대침체로 인한 글로벌 금융 손실 규모는 약 4조 달러에 달한 것으로 추산됩니다(출처: IMF). 제 경우엔 이 수치보다도, 그 손실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깊이 짊어진 것이 금융 설계자가 아닌 아무 잘못 없는 서민들이었다는 사실이 더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뭔가요? 일반 주택 대출이랑 다른 건가요?
A. 일반적으로 모기지는 신용도가 일정 수준 이상인 사람에게 제공되는 주택 담보 대출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그 기준에 미달하는 저신용자에게까지 확대된 고위험 대출을 말합니다. 2000년대 초 미국 정부의 규제 완화와 은행의 MBS 판매 욕구가 맞물리며 신용 심사 없이 무분별하게 공급됐고, 그것이 대침체의 직접적인 뇌관이 됐습니다.
Q. CDS가 보험이라면 왜 문제가 됐나요?
A. 일반 보험은 실제 피해를 입은 당사자만 보험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CDS는 채권과 아무 관계 없는 제3자도 계약을 맺을 수 있었고, 하나의 채권에 이론상 무한대로 CDS를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 구조 덕분에 소규모 채권 하나가 부도나도 그에 연결된 CDS 손실의 총합은 기초 자산을 수백 배 초과할 수 있었습니다. 월가는 이를 투기 수단으로 활용했고, 그 결과 합성 CDO라는 리스크 증폭 장치가 탄생했습니다.
Q. AAA 등급을 받은 채권이 어떻게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나요?
A. 신용평가사는 채권 발행사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등급을 매깁니다. 당시 신용평가사들은 수익을 위해 부실한 MBS·CDO의 상위 트렌치에 실제 안전도와 무관하게 AAA 등급을 부여했습니다. 투자자들은 이 등급을 믿고 매입했지만, 실제로는 부실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기반이었기 때문에 연체율이 폭등하자 등급과 무관하게 가치가 한순간에 붕괴했습니다. 이것이 구조적 도덕적 해이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Q. 한국은 왜 대침체 피해가 상대적으로 덜했나요?
A. 한국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을 뼈아프게 경험한 바 있습니다. 그 이후 금융 건전성 규제를 강화하고 외환보유고를 확충해둔 덕분에, 2008년 대침체 충격을 어느 정도 완충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 탓에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은 받았지만, 금융권 자체가 서브프라임 파생상품에 깊이 연루되지 않았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였습니다.
결론
대침체를 들여다보면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건 '금융 문맹'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일반적으로 금융 문맹은 그냥 돈을 잘 못 버는 상태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금융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시스템의 설계자가 만들어놓은 함정에 아무 의심 없이 걸어 들어가게 됩니다. AAA 등급이라는 권위, 정부가 보장하는 '내 집 마련'이라는 구호, 전문가의 자신감 있는 설명 앞에서 서민들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Too Big to Fail(대마불사)'이라는 논리로 거대 금융기관은 구제금융으로 살아남았고, 성실하게 대출금을 갚아온 중산층은 집과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이 비대칭이 대침체가 남긴 가장 추악한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금융의 본질은 경제의 혈맥 역할이어야 하는데, 그것이 리스크를 가공해 증폭시키는 도박판의 칩이 됐을 때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를 이 사태는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MBS, CDO, 합성 CDO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경제사 공부가 아니라, 다음 위기에서 내 삶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